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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식의 정도전 이야기[8] 정도전의 선대(先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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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7회 작성일 23-05-1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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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시내 원당로에서 봉화통로로 향했다. ‘봉화정씨 시조공 단소’를 찾아가기 위해서다. 상망삼거리를 지나 봉화로 가는 파인토피아로를 따라 2.5km쯤 가다가 첫 진출로인 문단리‧신암리 방향으로 내린다. 신암사거리에서 남쪽 방향 신암로 쪽에 높다란 ‘봉화정씨시조공제단소(奉化鄭氏始祖公祭壇所)’ 표석이 보인다.

표석 ⇒ 방향 골(束谷) 안쪽으로 300여m 들어가면 축구장 10여 개 규모의 ‘봉화정씨묘원과 주차장이 나타난다. 시조공제단소는 공원 안쪽 남쪽에 있다. 단소 가까이 가보면 엄청 크고 높은 단비(壇碑) 3기가 있다.

그중 가운데는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의 고조(高祖) 시조공 추밀원사(樞密院使) 공미(公美) 제단이고, 우측에 정도전의 증조(曾祖) 상호군(上護軍) 영찬(英粲) 제단, 좌측에 정도전의 조부(祖父) 상호군 균(均) 제단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단소에서 북편을 바라보면 정도전의 아버지 정운경 묘소가 300여m 거리를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정도전의 봉화정씨는 경상북도 북부 소백산 자락에 위치한 봉화지방의 토속 성씨이다. 오늘날 전해지는 각 성씨의 시조(始祖)를 살펴보면, 대부분 가문의 원류(源流) 또는 시조는 고려 말에서 시작하고 있다. 봉화정씨 또한 이 무렵 정도전의 고조 정공미를 시조로 한 가문(家門)이 탄생하면서부터 가첩 형태의 족보를 수기해 보존한 것으로 짐작된다.

봉화정씨 족보와 정운경(鄭云敬, 1305∼1366) 행장(行狀)에 따르면, 정공미는 고려조 호부령(戶部令)을 역임한 봉화 호장이라고 했다. 고려 시대 호장(戶長)은 수령이 파견되지 않은 속현(屬縣)에서 그곳의 행정을 전담했으며, 수령이 파견된 주군현에서도 부세‧부역‧호구 등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봉화정씨는 봉화지방의 토착 기반을 둔 일족으로써, 향리에서 중앙정부의 지방행정 집행에 영향을 미친 토착 세력의 일원이었다. 봉화정씨 시조 정공미 역시 선대로부터 호장을 세습(世襲)했다고 보여진다.

정공미의 아들 정영찬(鄭英粲)은 6품직으로 공문서와 경적(經籍)을 관리하는 비서랑동정을 지냈고, 정영찬의 아들 정균(鄭均)은 4품직으로 병기‧융장(戎仗)‧잡물 등을 제조 관리하는 군기감을 지냈다.

정운경의 행장에 따르면 정균은 젊은 나이에 요절(夭折)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균의 아들 정운경은 고려를 통틀어 5인 밖에 없는 양리전(良吏傳)에 오르고, 종 2품 형부상서(刑部尙書)에 이르러 부모의 자급(資級)을 올려 주는 관례에 의해 이 같은 품계를 증직(贈職)한 것으로 짐작된다.

출처 : 영주시민신문(http://www.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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